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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산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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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핵의학과 작성일2017-04-26 조회2,6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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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안팎으로 중대한 기로에 있는 지금 옛 시와 노래에서 애국을 되새겨 봅니다.

 

옛 동산에 올라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依舊)란 말
옛 시인의 허사(虛辭)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려
                                       

     일제 강압시절 노산 이은상 선생이 쓴 시에 홍난파 선생이 곡을 붙였다. 회고 조의 가사에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곡조가 식민지 민중의 심금을 울려 모두가 애창하는 가곡이 되었다. 여기서 ‘옛 시인의 허사’란 고려 말의 충신 길재(吉再)가 나라가 망한 후 지은 다음 시조를 말한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인품과 학식으로도 추앙 받던 길재가 영화로웠던 옛 서울 송도(松都)에 와서 인재들이 흩어져 없어진 것을 보고 인생무상을 읊은 것이다. 나라를 잃어 인간사가 바뀐 상황을 변화 없는 산천과 비교하여 서글픔을 강조하였다. 이은상 선생은 <옛 동산에 올라>에서 일반인도 잘 알고 있는 이 시조 구절을 인용해, 인걸뿐 아니라 산천초목도 쇄락했음을 암시해 망국의 한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광복하고 대한민국이 세워진 후에 태어난 현 세대에게는 이러한 뜻과 감정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저 자연 환경도 인생살이만큼이나 빨리 변하는 것을 노래한 곡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내 생각도 비슷했으나 이 번에 다시 살펴 보니 은유적 표현으로 애국을 호소하는 기가 막힌 시와 가곡이 아닌가!

 

     이야기를 바꾸어, 나는 1988년과 1989년에 1년 반을 미국 수도인 워싱턴시 근교에 있는 NIH 핵의학과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였다. 암의 영상과 치료에 단일클론 항체를 이용하는 주제이었다. 한국에서 임상의학을 전공한 나에게 큰 변화를 주는 시기이었다. 환자 자료를 분석하여 논문을 만들던 내가 한 단계 올라가 생물학, 화학, 분자생물학적 기법을 이용한 실험실 연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분야 지식과 테크닉이 전무했던 나는 재미있게 공부하였다. 특히 내 연구 책임자인 Reynolds 박사는 화학과 내분비내과를 전공해 박식한 분으로 많은 지도를 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선진국 연수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내가 NIH를 택한 것이 행운이었다. 우리 선배 교수들은 명성 있는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교포가 많은 미국 서해안 소재 대학에서 연수를 받았다. NIH는 일반인에게 유명하지는 않으나 정부 연구기관으로 자금이 풍부해 나처럼 어설픈 연구자에게 적당한 곳이었다. 실험 기자재를 사용하거나 물품을 구입하는 데에 제약이 적어 비교적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연수기간 동안 3가지 과제로 실험을 했지만 결과가 불완전하여 논문을 만들지도 못한 채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때 실수와 실패를 하면서 배운 지식과 실험기법이 국내연구의 기반이 되어 300 여 논문을 국제잡지에 발표할 수 있었고, 과분하게도 이 업적으로 몇몇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올 4월 초에 워싱턴시에서 열린 미국 암연구학회에 참석하였다. 미국 세상인지라 80 여 국가에서 2만 명이 와서 약 6,000 개 논문을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535명이나 참가해 활동하였다. 외국인 등록자로는 일본 다음으로 많았다고 한다. 나는 워싱턴에 온 기회에 우리가 살던 동네를 들려보고 Reynolds 박사도 만나기로 했다.


      내가 있던 29년 전에는 NIH에 우리나라 사람이 30명 정도 있었다(참고로 일본인은 300여명). 그 중 반수가 정규 직원이었고 나머지는 나와 같은 연구원이나 post-doc이었다.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등 의과대학 교수로 연구 차 온 8명은 처지가 비슷해 서로 의지하며 가깝게 지냈다. 그때 출생한 교수 따님 한 명이 지금 우리 과 전공의가 되어 수련을 받고 있으니 인연의 신비로운 작동이 새삼스럽다. 최근에는 거의 300 명 한국인이 일하고 있다니 우리의 성장이 감격스럽다. 

      그 당시에는 한국에서 온 사람 대부분이 Rockville에 있는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았다. 사실은 먼저 연수 받던 선배도 여기서 살았단다. 이 번에 찾아가 보니 여전히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마치 노래 속의 ‘옛 동산’과 같았다. 동네 주변은 건물도 새로 들어서고 길가도 더 번화해 졌지만, 우리 아파트 단지는 놀이터, 수영장, 체육관, 바비큐 시설이 그대로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웃이던 교수들은 다 흩어지고 그 중 반수가 이미 정년퇴직을 했으니 정녕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이다. 

      한국식당에서 Reynolds 부부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내가 귀국한 이후 5명의 한국 fellow를 연달아 받아주고 NIH 자금으로 훌륭히 교육시켜 우리 핵의학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하였다. 나보다 열 살이 많고 심근경색증과 뇌졸중으로 고생을 하다가 작년에 은퇴했단다. 서로 반갑게 만나 추억과 식사를 즐겼다. 몸이 불편하고 또 워낙 말수가 적어 이야기는 많이 못했지만 늦게나마 감사의 뜻을 전하니, 그 동안 밀린 숙제를 잘 마친 느낌이다. 우리 핵의학의 눈부신 성장에 본인도 자부심을 느꼈으리라.

 

한편, 이은상 선생의 시 <옛 동산에 올라>에는 내가 모르고 있던 2절이 있었다.

 

지팡이 도로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엔지
사태 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려

 

 

     암울했던 그 시절 무너진 산하에서 베어진 소나무를 대신해 새 솔이 나는 것으로 희망을 노래한 내용이다. 선생님의 염원을 넘어서 이제는 우리나라가 여러 면에서 일본을 비롯한 어느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게 되었다. 참으로 우리 민족에 자부심을 느끼고 또 감사한다.


     애국충정이 가득한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이 가곡에서 우리 모두 역사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자기 분야에서 새롭게 다짐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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