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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과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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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핵의학과 작성일2017-11-20 조회3,1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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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과거 만들기

 

 

 

     내 나이가 어느새 60대 중반이 되었다.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 80세와 비교하면 3/4 이상의 세월이 이미 지나간 것이다. 나에게는 과거 시간이 미래 시간 보다 3배나 많은 셈이다. 이렇게 보면 내 인생의 향방은 대충 결정 났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내 나름대로 논리적,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겠다.

 

    우선 과거는 현재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불교 연기론과 같이 현재 어떤 상황은 과거 여러 원인에 의한 것이다. 현재 결과가 잘 되었으면 지난 날의 그 행동은 잘 한 것이고, 거꾸로 현재 잘 안되었으면 원인 행위도 잘못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따라서 지금의 결과와 상황을 좋게 만들면, 과거를 바꾸는 셈이 된다. 옛날에 명백하게 잘못한 경우에도 피드백으로 그것에서 배우고 극복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성취했다면 그 실수가 용납된다. 예를 들어 사업에 실패했던 사람이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났다면 그때의 괴로웠던 시절이 가치 있는 과정으로 바꾸어진다.

 

     이번에는 신경과학적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다. 우선 우리 뇌를 구성하고 있는 신경세포에 관한 기초 지식이다. 신경세포는 천 억 개가 있고 세포 당 10∼10,000개 있는 가지돌기로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되어 있다. 세포는 여러 가지돌기로부터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흥분이나 안정' 중 하나의 방법으로 다음 신경세포에 전달한다. 즉, 외부정보를 선택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많은 세포들이 이러한 네트워크로 소통을 하고, 그 결과로 기억, 계산, 판단, 논리적 사고 같은 지적 기능이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과거란 무수한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기억이란 신경학적으로 신경세포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과정 자체이다. 연결이 강화된 신경세포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기억의 흔적을 만든다. 어떤 원인에 위하여 신호강도가 변하면 신경세포의 흥분이 변하고 연결이 강해지거나 또는 약해지면서 기억도 변할 수 있다. 즉, 마음 속에 있는 과거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기억이 감정, 판단 등과 다양하게 연결될수록 더 오래 안전하게 유지된다고 밝혀져 있다. 이 경우 기억이 재생될 때 연결된 감성이 동시에 떠오른다. 또, 현 시점에서 새로운 판단, 감정을 덧칠하여 재기억하고, 그 다음 인출 시는 새롭게 변한 기억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기억은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변하고, 이에 따라 마음 속에 있는 과거도 바뀌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과거사는 이런 기전에 의해 미화된 상태로 기억되고 있다. 반복될 때마다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마음이 편하도록 해석하기 때문이다. 추억은 항상 아름답고, 같은 일을 관계자마다 다르게 회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진실이 왜곡되고 인간사에서 비슷한 오류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혼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기억 인출물에서 사실(fact) 자체와 주관적인 감정이나 판단을 분리해 보는 것이다. 과거사의 기억에서 덧칠한 이성과 감성이 생긴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고통스러운 일인 경우에 이 방법이 유효하다. 회피하고 잊으려고 노력 하지 말고, 반대로 그 기억을 들여다보고 분석하여 정면으로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이 자기의 개인사를 글로 기록하고 정리해 보는 것이다. 일기나 자서전, 자전적 수필이 그 예이다. 또 다른 방법은 명상이나 자기 성찰을 통하여 특정한 과거사를 분석하는 것이다. 진실을 파악하고, 왜곡된 판단과 과장된 감정이 생긴 이유를 찾아 본다. 인생의 종점에 가까이 온 현 시점에서 보면 덜 심각한 일인 경우가 많다. 종교와 신앙생활도 좋은 방법이다.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악연도 무조건적 사랑과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이겨내기도 한다.

 

     우리가 기억에 덧칠한 판단과 감정의 이유를 분석하면 자신의 내면 상태를 더 잘 알 수 있다. 이런 착각과 오류를 벗어날 수 있다면, 남은 생을 진실되게 보내게 된다. 또, 괴로운 과거를 정리하고 승화시킬 수 있다면, 인격완성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지금이라도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 결과로 여생을 깨우쳐 살게 되고, 이 인연에 직간접적 원인이 된 지나온 모든 세월이 값지고 아름다운 과거로 바뀌는 셈이다.

 

     여하튼 지나온 과거는 대부분 행복한 추억으로 회상되는 법이다.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길이 다소 낯설지만 아름답듯이. 빛의 방향이 바뀌고 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낯설고, 걸어 온 생명의 기록이기에 아름답다. 살아 있다는 것은 활력 그 자체이고, 무생명인 다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다. 병든 시간도 생명이면 가져야 할 시기이듯이 어려웠던 기간도 피할 수 없는 내 삶의 일부이다.

 

    공자님은 60세가 되니 어떤 말을 들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해서 이순(耳順)이라고 하셨다. 다르게 말하면 공자님이 지나 온 삶, 모든 과거사가 이처럼 마음속에 정리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이 나이를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미망에서 헤매고 있다. 여러분과 함께 내가 이런 지혜를 얻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더욱 밝아지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대부분의 시간이 간직되어 있는 과거를 이런 적극적인 태도로 아름답게 다시 기억할 수 있다면 여생에 큰 축복이 되리라.

 

*이 글의 일부는 이현수 선생이 `너머학교'에서 2017년 출간한 책 〈기억한다는 것〉을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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