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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의 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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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핵의학과 작성일2017-11-20 조회4,2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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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의 참 모습

​     내 관심을 끄는 중국의 옛 인물 판화가 하나 있다(그림). 까까머리를 하고, 삶의 무상을 의미하는 뼈 조각 목걸이와 고귀한 인물을 상징하는 귀걸이를 하여 지체가 높은 스님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불경을 차곡차곡 가득 넣은 대나무 책 상자를 머리 위에서 다리까지 뒤로 메었다. 많은 경전을 안전하게 중국에 가지고 가기 위한 차림새이다. 밤중에도 걷기 위해 등불을 달고 모여 드는 날벌레들을 쫓으려고 한 손에는 채를, 다른 손에는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밤낮으로 여행하여 지친 기색이지만 체력은 남아있어 눈빛은 또렷하고 입술은 다부지다. 이 스님이 현장법사로 중국 시안(西安) 흥교사(興敎社)에 있는 비석의 탑본이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에 이 초상화에 채색을 한 복사 품도 만들었다.

      중국에는 불교가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했다. 여기에는 삼장법사 현장의 공이 크다. 직접 인도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고, 많은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삼장법사는 불경 중 경장(사물의 진리에 관한 책), 율장(계율을 모아 놓은 책), 논장(불법을 논한 책)에 모두 통달한 현장의 별칭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오승은이 지은 〈서유기(西遊記)〉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장은 서기 600년 중국 수(隋) 나라에서 태어나 664년 당나라 고종 때 사망하였다. 13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불경이 턱없이 부족하고 잘못된 번역도 많았다. 불교 본 고장에 가서 배우려고 627년 인도로 떠났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목숨을 건 여정 끝에 인도에 도착하였다. 인도 전역에 있는 불교사적을 찾아 정진하고, 불교의 중심지인 날란다 사원에 들어가 시라바드라 밑에서 수행과 연구에 힘썼다. 학식이 깊어지자 카나우지에서 하르샤 대왕의 우대를 받으며 강론하였다. 천국 28개국 국왕과 3천 명의 고승이 참석한 법회에서 18일간 토론을 주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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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641년에 640여 질의 경전과 불상을 가지고 귀국길에 올랐다. 힌두쿠시와 파미르 험로를 넘어 645년 대대적 환영을 받으며 장안으로 돌아왔다. 현장은 139개국을 순례하여 1만6000 km를 여행한 것이다.

      그 후, 당 태종(太宗)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19년 여생을 가져온 불교 경전의 번역에 몰두하였다. 수 나라와 당 나라 사이 200년 동안 54명이 2713권의 불전을 번역하였는데, 그 중 절반인 1335권을 현장이 완성하였다. 불경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또 다른 구법(求法)의 길이었다. 방대한 분량의 산스크리트 용어를 한문으로 바꾸고 원본에 충실하나(직역, 直譯) 어려운 교리는 적절하게 다듬어(의역, 意譯) 완벽하게 출판하였다. 그가 유능한 승려들의 협조로 역장(譯場)을 조직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한 결과였다. 대부분이 대승불교 경전으로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티베트, 베트남 같은 한자 권 국가에서 불교 중흥에 밑바탕이 되었다.

      현장은 불경으로 이룬 업적 외에도 또 다른 공을 세웠다. 그로 인해 중국과 인도 간에 외교가 시작되었고 그가 개척한 길은 교역의 길인 실크로드가 되었다. 또한 그가 쓴 여행 견문기인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은 인도·네팔·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고대 역사 지리와 고고학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법사의 생애를 거친 진리탐구의 열정과 실현은 지금도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그 당시 인도 유학은 십중팔구 죽음의 길이었지만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확히 알고자 하는 일념으로 모험을 한 것이다. 불경 번역사업은 또 다른 두 번째 모험이었다. 이 두 필생의 과제는 서로 다른 재능을 필요로 했다. 즉, 험로를 수년에 걸쳐 개척하는 담대함과 체력, 인도유학에서 보인 지력과 성실함, 인도와 당나라 지도층의 지지를 얻는 설득력과 친화력, 불경 번역에서 보여주는 인문 사상과 지도력 등 다양한 능력이 발휘된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서유기〉 영화나 만화영화에 나오는 현장법사는 모두 앳된 여성 같은 용모였다. 내가 시안(西安)을 여행할 때 본 현장의 동상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찬란한 성취를 이룬 위인이라고 믿기 어려운 평범하고 오히려 연약한 모습이었다. 〈서유기〉 책 속에서도 거대한 목표를 성취하기에는 약점이 많은 너무나 인간적인 성격으로 묘사되어 있다. 언뜻 보아서 무능하게도 보일 수 있으나 확고한 신념에 선한 고집이 있어 모두들 미워하지 못하고 도와 주게 만드는 인물이다. 현장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그를 애틋해 하는 민중의 호응과 협조가 더해져 이런 큰 업적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허구의 소설이지만 어느 정도는 실제 모델의 됨됨이를 참조했으리라.

         삼장법사 현장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높은 종교인의 체취는 엄격함 보다는 부드러움으로 내비치기 마련이다. 생전에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무한한 애정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화려한 업적과 상반된 전설로 가려져 있는 현장의 참 모습을 찾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공부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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