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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바라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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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핵의학과 작성일2017-11-28 조회3,1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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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바라 본 풍경

 

     우리 병원 핵의학과가 일주일 전에 이사를 하였다. 수술장을 확장하려는 병원 계획에 따라 본관 자리를 내주고 의생명연구원 건물 6층으로 옮긴 것이다. 이 건물은 창경궁과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어 서쪽 창가에서는 창경궁과 창덕궁이 훤하게 보인다. 병원과 핵의학과는 선임교수인 나를 배려하여, 고맙게도 이 두 궁궐을 바라보기에 가장 알맞은 자리에 내 방을 배치하였다. 지금 교수실 창 밖을 내려다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해 본다.

 

     조선시대에는 5개 궁궐이 있었다.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가운데 있고, 동쪽에 창경궁과 창덕궁, 서쪽에 덕수궁과 연희궁이 위치하였다. 조선 개국 초에는 국왕이 경복궁을 사용했지만 임진왜란으로 심하게 파손되었다. 훼손이 덜한 창덕궁을 1616년 광해군이 재건하고 창경궁을 부속 궁궐로 사용하여 조선후기 왕들은 이 동궐(東闕)에서 생활하였다. 대원군이 집권을 한 후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경복궁을 재건하여 다시 정궁으로 사용하였다.

 

     내 방에서 궁궐을 둘러싸고 있는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과 남산이 함께 보인다. 거주지 지형의 좋고 나쁨이 사람의 화복(禍福)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풍수지리설에 근거해 무학대사가 새 도읍지로 찾아낸 명당이 바로 이곳이다. 거꾸로 지금 나는 동궐과 이들 산세의 지맥에서 이 학설을 독학으로 익히고 있는 셈이다. 문외한인 내 생각에도 집 뒤에 큰 산이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고 심신을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산맥이 없고 지평선만 보이는 미국 중부 도시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던 재미교포도 만난 적이 있다. 참고로 그 당시 한양에 눈이 내렸는데 녹지 않은 울타리 선을 따라 무학대사가 성곽을 쌓게 해서 `설(雪)울타리', `설울'이라고 부르고 나중에 `서울'로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옛 그림인 `동궐도(東闕圖)'가 있다. 그림 속에는 창경궁과 창덕궁에 빼곡하게 여러 건물과 행랑이 있었으나, 일제 시대에 많은 건물을 파괴하여 지금은 몇 채만 남아있다. 이 중에서 명정전, 문정전, 환경전, 경춘전은 왕과 왕비, 대비가 주거하고 활동하던 건물이다. 이와 같이 이름 끝이 `전(殿)'인 건물에서 사는 사람을 전하(殿下)라고 존칭하였다. 하나 아래 급에 해당되는 왕세손이나 정승이 살던 집은 이름 마지막에 `각(閣)'자를 붙이고 주인공을 각하라고 불렀다. 따라서 군부 독재시절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대통령에 붙였던 각하 호칭은 합당하지 않아, 김영삼 대통령부터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일제 강압기에 그들은 철저하게 조선의 왕궁을 파괴하였다. 경복궁 대문인 광화문을 치우고 궁내에 총독부 건물을 크게 지었다. 경희궁은 철거하고 일본 학생들이 다니는 경성중학교로 바꾸었다. 창경궁은 이름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많은 전각, 행랑을 파괴하면서 동물원과 식물원을 새로 만들어 유원지로 조성하였다. 왜색의 박물관과 연못도 만들고, 원내에 수천 그루 벚꽃 나무를 심어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열었다. 한편, 조선의 선왕(先王)들을 모시는 종묘와 동궐 사이에 신작로를 만들어 지맥을 단절하고, 종묘 앞에는 윤락가를 두었다.

 

     창경원 벚꽃놀이는 일제시대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건국되고도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주로 젊은이가 모여들었고 남녀 대학생들이 단체로 데이트를 하는 풍경도 일상화되었다. 벚꽃이 한창인 4월의 밤 연인들은 길 하나를 건너 나무숲이 우거진 서울의대 컴퍼스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첫 중간고사인 때이어서 많은 의대생들이 도서관에는 해부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학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은 심술궂은 학생 몇 명이 해부 실습용 대퇴골을 가지고 아베크 족의 머리에 꿀밤을 주었고, 화가 난 청춘 남녀들이 의과대학 학장실에 와서 항의를 하는 진풍경도 있었단다.

 

     1981년이 되어서야 늦게나마 정부가 창경궁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래 사용되었던 명정전과 그 앞 품계석(品階石), 좌우 회랑을 재건하였다. 왕이 집무하던 문정전 일곽이 복구되었고 동물원과 식물원은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하였다. 그 많던 벚꽃나무는 어린이 대공원으로 옮기고, 대신 본래 있던 소나무를 심었다. 궁궐 주위 상가 건물도 정리해서 마침내 1986년 8월 창경궁으로 다시 일반에 공개하였다. 율곡로를 지하 차도로 바꾸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종묘와 궁을 다시 연결시키는 공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1971년부터 서울대학교 연건 캠퍼스에서 지내온 나는 창경궁과 빛과 그림자의 세월을 같이하여 왔다. 어릴 때 차멀미를 하면서도 소풍을 오던 창경원의 동물원, 그러나 발 하나 옮기기 어려운 만원사례 유원지, 그 난장판 속에서도 맛있게 먹던 어머니 김밥, 아버지와 연못에서 타던 보트가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다.

 

     대학생이 되어 가진 창경원 야간 미팅, 병원에서도 간간히 들리던 코끼리의 포효, 전공의 시절 병동 멤버(간호사와 실습 학생)들과 즐긴 밤 벚꽃, 창경궁 담장에 붙어 있던 3층 건물의 중국집과 맥주 집, 맛있던 대학식당의 된장찌개, 장안에 유명했던 원남카바레, 교수가 되어서도 몇 년에야 한번씩 찾아 구경하던 후원의 봄 꽃과 가을 단풍, 그리고 생각보다 작은 명정전의 옥좌와 마당의 품계석….

 

     나라의 역사와 내 개인사가 섞인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다가, 창 밖을 다시 보니 동궐 후원 숲에 늦가을이 가득하다. 내일은 꼭 시간을 내어 제자들과 함께 창경궁을 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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