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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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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핵의학과 작성일2018-04-23 조회2,30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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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친구

      1971년에 의예과에 입학한 우리 의과대학 동기생은 이번 2월말에 대부분 병원에서 정년퇴직을 한다. 우리 대학병원에서도 9명이나 떠난다. 6개월이 지나면 나도 퇴직하지만 그래도 먼저 나가는 친구들을 보니 심란하다. 온실 같은 대학병원에서 따뜻하게 지내던 벗들이 영하권의 바깥세상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쓴다.

      의대 6년을 같은 해 입학해서 공부하고, 전공은 다르지만 5년간 인턴, 레지던트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련 받고 군대에 다녀와 30년 이상 같이 교수생활을 했으니 이 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불교에서는 길거리에서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300생(生)이라고 한다. 즉, 인간으로의 생애를 300번 같이 윤회하면서 맺은 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교해 우리는 근 반세기 시간을 이렇게 지냈으니 더 기가 막힌 인연이다. 아마 과거에 1000번의 생애를 같이 하지 않았을까? 우리들의 천생인연(千生因緣)은 하늘이 정해준 부부 사이인 천생연분(天生緣分)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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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억세게 운이 좋았다. 전공의 과정을 끝내고 군복무를 마치면서 전임의 과정 없이 바로 스텝으로 취직을 하던 시대였다. 우리가 제대하는 해에 마침 서울대병원에 어린이병원을 설립하면서 신임 교수 자리가 많이 생겼다. 적지 않은 동기생들이 처음부터 문교부 전임강사인 정규직 신분으로 발령받았다. 모두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근 10년을 견디어야 정규직 부교수(副敎授)가 되는 현재의 젊은 교수들을 보면 안타깝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후배들의 능력과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 선배들이 잘못한 탓이다. 여기에 나는 성이 정(鄭)씨라 초임부터 정교수(正敎授)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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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기생 중에도 특히 김의종, 조광현 선생과 가깝게 보냈다. 세 명 모두 내성적으로 조용하고 유명세는 없지만 성실하다는 것이 우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동기인 이윤성 의학회장 말이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모임에 가보면 항상 참석하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다. 특히 우리 셋은 군복무도 같은 병원에서 하고 군인아파트에서 살아서 가족끼리도 잘 알고 지낸다. 장기연수도 같은 때 미국으로 가서 서로 방문하고 여행도 했다. 1988년 성탄절에 뉴욕 맨하튼 김의종 선생 집에서 부인이 만든 칠면조 요리를 포식한 잊지 못할 추억도 있다. 교수가 되어서는 각자 생일 때 마다 점심을 같이하여 33년을 지속했다. 물론 평소에도 자주 만났으나, 요즘은 다소 뜸하다. 그러나 우정에도 연륜이 생겨 만나지 않아도 같은 병원에 있다는 생각에 든든하다. 조광현 선생은 우리 사이를 중국고사에 나오는 관중과 포숙의 우정(관포지교, 管鮑之交)에 비유한 바 있다.

      검사의학과를 전공한 김의종 선생은 이론과 실무를 다 갖춘 교수이다. 미생물학 세부 전공으로 직접 현장 경험을 하면서 얻은 지식과 능력으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학자가 됐다. 또한 분자생물학을 우리나라 검사의학에 처음 도입한 프런티어이다.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이 창궐하는 요즈음 국가적으로 방어체제를 세우는데 크게 공헌했다. 변형 바이러스와 슈퍼 박테리아는 계속 등장하고 있어 더 큰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년 퇴직을 하게 되어 아깝다.

누구라도 김 선생을 만나면 한 눈에 선하고 착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소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신장과 체중이 평균 수준이지만 우리 셋 중에는 가장 풍채가 좋다. 한 번은 교수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나오는데 주방 아주머니가 따라와 아들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다. 잘 모르는 사이인데 부탁하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평소에 그가 교수 중에서 가장 인품이 있어 보였다고. 감격한 김 선생은 흔쾌히 맡아서 했고 그 사연을 지금도 자랑하고 있다.

우등생인 조광현 학생이 피부과를 지원하자 똑똑해서 부담이 된다고 오히려 과에서 만류했단다. 그렇다고 조 선생이 수입이 많은 피부미용의 인기를 미리 예측해서도 아니었다. 피부암을 비롯한 전통적인 피부병을 세부전공으로 정했다. 피부병은 눈으로만 보고 진단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과 시간을 거쳐야 진정한 전문가가 된다. 그는 꾸준한 노력 끝에 마침내 명의가 되어서 전국 각지에서 난치성 피부병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실제 그는 TV “명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적도 있다. 희귀병인 경우, 문헌까지 찾아보나 모르는 경우도 있겠다. 어떤 환자는 교수님이 모르면 어디서 진단을 받겠냐며 연구를 좀더 하라고 핀잔을 하더란다.

      그는 나하고 친구를 넘어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가까운 절친으로 병원 양쪽 진료과와 집안의 식구들은 잘 알고 있다. 상대의 일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 챙기고 보살핀다. 한 예로, 내가 의학역사문화원장인 시절, 우리가 주최한 모든 행사에 조 선생은 꼭 참석했다. 안목도 점차 닮아가 부인과 처음 만날 때에도 우리 집사람과 분위기가 비슷하여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조 선생은 항상 교수의 직분을 생각하고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자기성찰을 계속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에도 정확히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가 음악 연주 전 다른 악기에게 절대 음감을 알려주는 피아노의 `라'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날로 혼돈스러워지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의 얼굴은 언뜻 보아서는 부드럽고 평범하나 충실하고 굳센 내적 모습도 비친다. 뭐든지 한번 시작하면 열심이어서 심지어 학교 헬스장에서도 유일하게 개근을 하고 있다. 그는 젊어서부터 마른 체형으로 점잖은 중년신사 같았다. 우리가 청운의 뜻을 품고 교수가 갓 되었을 때의 일이다. 같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6년 선배인 C 교수님과 마주쳤는데, C 교수님은 그가 연장자인 줄 알고 먼저 공손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랬던 그의 용모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어 오히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떠나는 동기생 모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낯선 바깥세상에서도 여든 살 노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고 변함없기를 바란다. 하늘이 짝 지어준 천생연분인 부부 사이를 가르지 못하듯이, 천생인연인 우리 우정은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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