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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에 발표한 연구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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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핵의학과 작성일2018-04-23 조회2,1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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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만에 발표한 연구 논문

 

        이 글은 내 전공인 핵의학 분야에서 생긴 일로 여러분이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비슷한 경우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도 사람이니 학계의 세상사가 일상과 다름이 없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되도록 여러분이 알기 쉽게 설명해 보겠다.

        나는 1988년 초부터 1989년 여름까지 일년 반을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NIH) 핵의학 실험실에서 연구원으로 지냈다. 연구 주제는 `방사성동위원소 표지 항체를 이용한 암의 영상 진단과 치료법 개발'이었다. 아시다시피 항체(antibody)는 항원(antigen)과 서로 맞는 짝끼리만 선택적으로 결합한다. 암세포에는 다른 세포에는 거의 없는 특이한 항원이 있고, 여기에 결합하는 항체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일 수 있다. 이런 항체를 인체에 주입하면 암세포를 찾아가 항원에 결합한다. 그 후 방사성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능으로 영상을 만들고, 강력한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암을 파괴 시킨다는 전략이다. 1970년대 초 미국의 골든버그와 김의신 선생 그룹이 다클론항체(동물에서 만들어진 항체 혼합물)를 이용하여 연구를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 랄슨 팀이 인공적으로 만든 순수한 단일클론항체로 개선하였고 이 업적으로 NIH로 영전되어 연구하고 있는 시기에 내가 참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미사일처럼 암을 찾아내고 치료할 수 있는 `방사면역 영상법과 치료법'이라고 각광을 받았으나 막상 임상 환자에서는 기대하던 효과가 거의 없었다.

       이 개념이 요즘 이름을 바꿔 계속 등장하고 있다. 즉, 암의 표적치료(targeted therapy), 개인별 맞춤치료(personalized therapy), 분자의학(molecular medicine), 테라그노스틱(theragnostics, therapy와 diagnostics의 결합), 나노의학(nanomedicine)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 단계 발전한 내용에 강조점이 다르지만, 크게 보면 비슷한 원리를 다른 시각에서 붙인 전문용어인 셈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최첨단이고 독창적으로 보이도록 포장한 것은 아닌지?

       나는 기초연구를 관장하는 레이놀즈 선생 소속으로 배정되어 실험기법을 배웠다. 특히 생체에서 떼어낸 종양의 조직 편을 자가방사영상법으로 검사해 `암 조직 내 종양항원의 분포와 농도'를 측정하는 In vitro quantitative autoradiography(IVQAR)가 내 담당이었다. 누드 마우스에 종양을 만드는 생체실험도 공부하였다. 누드마우스는 세포면역기능이 없어 인간 암세포를 이식해도 거부반응 없이 자라서 이를 이용한 종양학 연구가 활발하다. 이 마우스는 털도 함께 없어져 누드 마우스라는 관능적인 이름으로 부른다.

       1년 6개월 동안 몇 과제를 연구 했지만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귀국을 앞두고 의기소침하여 있는 나에게 옆 실험실에서 초면인 남자 연구원이 내가 IVQAR 담당임을 알고 찾아왔다. 누드 마우스에서 흑색종을 만들어 종양 조직에서 항체의 결합과 조직 내 항원의 존재를 비교해 보자는 참신한 제안이었다. 귀국하기 두 달 전이라 정리할 것도 많았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서둘러 실험을 진행하였다.

       흑색종이 생긴 누드 마우스에 방사성동위원소 표지 항체를 주사한 후 `생체에서 암 조직에 붙은 항체 분포와 농도'를 측정하였다. 그 후 같은 조직에서 IVQAR 검사로 `암 조직 내 종양항원의 분포와 농도'를 측정하여 서로 비교하여 보았다.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나오리라 예상했지만 다섯 마리 예비 실험에서 결과가 일관성이 없고 너무나 다양하게 나타났다. 밤잠을 설쳐가면서 출국 직전까지 실험했지만 성과 없이 NIH를 떠나 귀국하였다.

       요즘 정년을 앞두고 그 동안 했던 일을 정리할 시간이 있었다. 이 실험 자료를 다시 평가해보니 다양하게 나오는 결과가 오히려 일리가 있어 보였다. 실상 누드 마우스 실험은 생각보다 환경이 좋지 않고 실험 조건도 세밀하게 맞추지 못한다. 감염, 저 체온, 영양부족, 쇼크 같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심지어는 실험 도중에 마우스가 사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황과 또 다른 요소들이 종양항원과 항체의 결합에 영향을 주어 이론과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환자에서 기대했던 결과가 안 나타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까지도 이런 내용의 연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이 NIH 실험 자료를 fellow인 김용일 선생과 함께 분석해 28년 만에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 분야의 중견 학술지인 Cancer Biotherapy and Radiopharmaceuticals에 투고하니 비록 실험동물의 수는 적으나 의미가 있다고 평가되어 마침내 2017년 초에 게재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연구를 제안한 이웃 실험실의 연구원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나는 약간의 대머리에 안경을 쓴 그 사람 이름이 H로 시작된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아쉽고 미안하지만 H 이름 없이 논문은 출간되었다. 그가 이 글을 볼 수 없으니, 여기서 유감의 말을 적는 것은 순전히 죄의식을 줄이려는 내 얄팍한 속셈 때문이다.

        이번 일에서 나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우선, 학문은 생각만큼 빠르게 발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암조직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물질을 이용하려는 개념을 앞서 말한 여러 이름으로 반복하여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진정한 발전은 없는 셈이다. 용어만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우리는 과거의 실패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생체 내 분포 같은 문제점을 간과하여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교훈으로, 같은 자료도 지식과 경험의 깊이에 따라 다르게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는 만큼 연구 자료를 해석할 수 있다”도 과학계의 명언이다.

        독자 여러분, 이 글에서 삶의 지혜를 얻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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