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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MSNUH 작성일2017-04-17 조회3,0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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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피카소의 그림 세 점



* 지난번에 연재한 “모네와 고흐, 두 화가의 눈” 이야기가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에 힘입어 올해 출판된 내 졸저 <의학의 창에서 바라본 세상>에 실린 피카소 그림에 대한 글을 다시 소개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의견을 기대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미적 감각이 없었다. 우리 중고등학교는 창덕궁 후원과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있어 봄가을로 미술시간이면 운동장에서 궁궐의 후원을 내려다보며 풍경화를 그렸다. 하늘과 나무와 땅의 색깔을 원색으로 표현하는 수준의 그림 솜씨는 학창 시절 내내 거의 발전이 없었다. 대학교 입시에서 면접을 보던 교수님이 미술 성적이 ‘미’로 유난히 나쁜 것을 신기해 할 정도였다. 풍경화를 그리던 중 친구가 나뭇잎에 다른 색깔도 덧칠해 보라고 조언해주었다. 나는 초록색 한 가지면 충분하다고 우겼다. 그러나 나뭇잎도 사실은 연두색, 초록색, 짙은 초록색, 검은 초록색 등 다양한 색깔의 혼합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미술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미적 안목은 주로 공부를 통해 얻은 것이다. 동양화는 실제 그림의 미적 요소보다 그림이 상징하는 지적 요소를 더 중시한다. 예컨대 칠순 잔치에는 묘작도猫雀圖를 선물한다. 말 그대로 고양이와 참새를 같이 그린 것인데 고양이 묘猫자는 70세 노인을 뜻하는 중국말과 발음이 같고,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기쁠 희喜와 비슷하다고 하니 결국 칠순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팔순에는 나비와 함께 목단을 그린다. 나비 접蝶자는 팔십 노인을 뜻하는 중국말과 발음이 같고 목단꽃은 부귀영화를 뜻한다. 우리 산수화는 대자연 옆에 조그맣게 사람을 그려 넣는다. 화가 자신을 풍경 속에 이입하는 것이다. 그림 옆에 경치를 본 작가의 감상을 글로 적기도 한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호흡기내과의 한성구 교수가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세 편을 소개해주었다. 의학자의 입장에서 이 그림을 분석해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첫 번째[그림 1]는 1897년 피카소가 16살에 그린 ‘과학과 자비Science and Charity’다. 여러분이 익히 아는 피카소의 다른 그림과 달리 정통파 서양 회화로 십대 청소년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의사와 수녀가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고 있다. 환자의 맥을 짚는 의사는 의학, 즉 지적인 과학을, 아기를 안고 병자에게 물을 먹여주는 수녀는 감성적인 자비를 상징한다. 자비로운 마음을 지닌 채 과학적, 의학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실로 진정한 의술이리라. 어린 피카소가 무슨 이유로 이런 장면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의학의 정수를 나타내는 제목과 내용이다. 소년 피카소는 아버지와 여동생 롤라를 모델로 의사와 어린아이를 그렸다. 아버지도 화가였지만 피카소가 열 살 때 아들의 천재를 발견하고 자신의 직업도 포기한 채 아들의 교육에 열중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피카소도 아버지의 뜻과 지도를 따랐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피카소는 아버지에게 반발했다. 그림 속 의사의 태도에서 피카소의 소리 없는 항변을 느낀다. 그는 악화되는 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는 못하고 고작 맥박만 잴 뿐이다. 죽어가는 환자를 관찰만 할 뿐이다. 무능력한 의사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두 번째[그림 2]는 피카소가 26세였던 1907년 파리에서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 Avignon’이다. 입체파 화풍의 첫 작품으로 유명한 그림으로 그는 일약 현대 미술계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가까운 동료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채 100번 이상의 교정을 거쳐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가난과 삶의 고통으로 우울한 일상을 보내던 그는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모델로 만나 일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녀에 의해 피카소 화풍이 우울한 청색 시대에서 명랑하고 화려한 장밋빛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피카소는 쾌활하고 육감적이며 관능미가 넘치는 그녀를 모델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비뇽의 처녀들’에서는 다섯 명의 여성을 이전의 회화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표현했다. 사물을 한 방향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관찰하여 입체적으로 해석한 뒤 캔버스에 재구성한 결과다. 예를 들어 여인의 가슴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앞에서 본 모습과 옆에서 본 모습을 같이 그리고 감상자의 상상으로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적인 입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페르낭드는 누구일까? 왼쪽에서 두 번째나 세 번째 여인이 눈에 띈다. 나는 그림 가운데 여인이라고 확신한다. 두 번째보다 장신이고 볼륨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 명은 아프리카 조각에서 차용한 마스크와 입체파의 변형으로 묘사된다. 이 여인을 더 자세히 보자. 큰 키와 계란형 얼굴에 쌍꺼풀진 커다란 눈동자, 뚜렷한 눈썹, 뾰족한 콧날, 가지런한 입술을 지녔다. 여기에 적당한 색감의 부드러운 피부, 풍만하고 팽팽하게 올라간 가슴, 도톰한 허리와 엉덩이, 기하학적 형태의 팔과 다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면 육감적이면서도 우아한 페르낭드가 탄생한다.

 

세 번째[그림 3]는 피카소가 무려 90세였던 1972년에 그린 ‘죽음을 앞둔 자화상Self-Portrait Facing Death’이다. 수십 점의 자화상 중 사망 일 년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받았다. “죽음의 공포를 묘사했다, 해골 모양의 머리, 크기가 다른 눈동자, 창백한 얼굴을 표현했다, 머리 뒤쪽의 빨간 선들은 피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암시한다”는 평론이 있는가 하면, “형형색색의 색채와 부리부리한 눈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죽음을 뚫어지게 응시한다”는 엇갈린 평가도 있다. 의학자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우선 이 얼굴은 입체파 얼굴과 달리 비대칭이 아니다. 눈썹, 눈 가장자리, 코와 턱에서 좌우 양쪽은 완전히 대칭적이다. 그러나 얼굴에 수직으로 중앙선을 그어 좌우로 나누면 전혀 다른 점이 드러난다. 좌측 반쪽은 동공이 수축되어 있고, 피부과 털은 녹회색이다. 우측 반쪽은 동공이 확장되어 있고, 주름은 더 깊어졌으며, 털도 검은색으로 변했다. 배경은 핏빛이다. 의학적으로 동공반사는 사람이 사망했는지 판단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살아 있을 때 눈에 빛을 비추면 동공이 축소되지만, 죽은 후에는 확장된 채로 반응하지 않는다. 즉 얼굴의 왼쪽 반은 살아있을 때이고, 오른쪽 반은 죽은 후다. 죽어가는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2차원 화폭에 시간 경과에 따른 4차원적인 변화를 나타냈다고 할까. 

 

따라서 이 세편의 그림에서 피카소의 미술학적 진전을 알 수가 있다. 그림 1은 전형적인 이차원적 서양화이고 그림 2는 평면의 캔버스에 삼차원적인 표현을 시도하였다. 그림 3에서는 여기에 시간이 경과를 포함하여 사차원적인 변화를 표현하였다. 소년기에는 평면화에 재능을 보이고, 청춘기에 입체파 화풍을 시도한 그가, 노년기에 시간에 의한 사물의 변화까지 그림으로 포착한 것이다. 실제 피카소가 이를 인식하면서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옆에서 설명을 듣던 윤혜원 교수는 피카소가 외롭고 불쌍해 보인다 했다. 나는 전혀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그때야 나는 아직도 그림을 머리로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학적 입장으로 새롭게 분석은 하지만 그 안목은 이성적 지식에 의한 것이다. 작품 자체에서 화가가 표현하는 감성을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미치(美痴)인 셈이다. 어쩌면 ‘과학과 자비’도 일종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피카소 자신이라면? 다른 예술가와 달리 생전에 명예와 부를 소유했던 피카소도 ‘죽음을 앞둔 자화상’에서 보듯 내면적으로는 외로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자화상’에서 그렸듯 아버지와 동생 같은 가족의 간호와 애정을 진정으로 그리워했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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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과학과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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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비뇽의 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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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죽음을 앞둔 자화상

 

 

-2016.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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