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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돌이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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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NMSNUH 작성일2017-04-17 조회2,6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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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돌이와 갑순이> 노랫말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마음 뿐이래요마음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모르는 척 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시집간 날 첫날 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더래요

장가간 날 첫날 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더래요

...

 

 

1965년 미모의 가수 김세레나 가수가 꾀고리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블러불러 인기가 많던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이다. 여전히 지금도 간간히 들을 수 있는 이 노래는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혼합된 신민요 장르로 소개된 이 노래는 일제 시대 전기현 선생(1909-1945?)이 작곡한 <온돌야화>를 다듬은 것이란다.   

 

   어릴 때 나는 이 곡을 듣고 노래가사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했다았에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내용이 잘못한 결혼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좋아하던 남녀가 서로 마음을 감추고 있다가 각자 다른 사람과 부부가 된 슬픈 사연이었다. 더욱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다는 결말에 해당되는 4절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데도 여가수는 오히려 예쁜한복을 입고 날아 갈듯이 흥겹게 춤추며 노래하였다.

 

어떤 가요가 유휴행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대중이 공감을 한다는 뜻m이다. 노랫말도 마찬가지 이어서 여러

분과 함께 이 글에

이이유를 살펴 보기로 한다. 우선 두 사람은 얼마나의 사랑을 했이 어떤 것이었을까? 사실 마음뿐이고 서로 모른 척하는 관계는 성숙한 애인 사이가 아니다. 한 마을에 사는 청춘끼리 갖는 상대방이성에 대한 호감이다.밤 무슨 이야기 끝에, 어릴 때 들었던 이 노래 생각이 났다. 노래를 흥얼거려 보노라니 코끝이 약간 찡해지는데, 그게 노래 때문인지 어릴 때 기억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3절에서 딱 멈췄다. 아무리 해도 4절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1절은 갑돌이-갑순이, 2절은 갑순이, 3절은 갑돌이... 다시 4절에서 갑돌이-갑순이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4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작은 시골 동네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같이 놀고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우정 같은 애정이다. 

 

사람은 만 6세가 되면 성호르몬이 잠시 분비가 잠시 증가한다. 진화론적으로 해석하면는 이 때가 원숭이 사춘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잠시 이성에 끌리나을 느끼게 되나 곧 송과샘에서 나오는 물질이 성호르몬이 분비를 막아 사춘기가 늦게 나타난를 연장시킨다. 따라서 이 시기에근거로 송과샘에 이상이 생기면 성조숙증이 온다. 여하튼 6세를 전후해 또래 남녀가이성에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으나 아직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여러분에게 친숙한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남녀와 짝이 된다. 옛날에는 모두 어른이 결정하는 중매굘혼을

 

이 노래 주인공은 각자 다른 남녀와 짝이 되었다된다. 옛날에는 어른들이 결혼상대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는 중매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다른 좋아하는 사람과이성이 있어도 헤어지는 까닭에 마음 속가슴으로 울고, 한밤중에 달을 보고 울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일반적인보통 선남선녀를 뜻‘갑돌이’와 ‘갑순이’라고 하나, 형제자매 중 맨 위 첫째를 일켰는 말이기도 한다. 장남, 장녀는보통 첫째 자식들은 부모가 예뻐하고 동생에게 모범을 보이도록 교육을 받기에,우선시 하기 때문에 온순하고 가족과 집안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결혼했을 것이항상 고려한다. 아마 ‘을돌이와 을순이’ 경우는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정말 마음 깊이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면? 원래 인일생과 운명이란 뜻대로 안 되는 괴로운 바다이다.가 아닌가? 부처님도는 2600년 전에 “보고 싶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가장 큰 괴로움이다.”라고 하셨다. 이 가요는 우리모두가 겪어 공감할만하고 겪었을 만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다. 

   

나중에 이 두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문제를 제기한 3절 만 있고 결론이 없다.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듣는 사람 각자가 자기 처지에 빗대어 상상하면 된다. 이 점이 노래의 포인트이고 내 마음에 든다.

그러면 중매결혼을 했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불행한 목석 같이 살면서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옛무덤에서 간간히 발견되는 부부 간의 편지를 보면 지금의 연애편지 못지않게 열정적이다. 선남선녀는, 즉 갑돌이와 갑순이는 처음에는 화가 낫지만 

나중에 노래를 찾아보니, 세상에, 놀랍게도 4절은 원래부터 없었다. 노래는 그냥 저렇게 끝나버리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사랑을 했지만 마음 뿐이다가, 어찌어찌 해서 갑순이가 먼저 시집을 가서 갑돌이 생각에 한없이 울고, 홧김에 갑돌이도 장가를 가서 달보고 운다. 그리고 끝? 아니, 뭔가 있어야 하지 않나?

 

노래 참 잔인하다. 중동무이해버린 것 같은 가사에 따르면, 갑순이 갑돌이는 각기 저렇게 달을 보고 한없이 울세월이 흐르면서 각자 짝과 서로 적응하고 화합하여 아들 딸을 낳아 기르면서며 평생을 잘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인생이란, 당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할 갑순이의 남편이나 갑돌이의 아내에게도 참 잔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세월이 약이고 정이란 살면서 드는 것이라고 하니, 갑순이도 갑돌이도 각기 애 두서넛씩 낳고 살 붙이고 살다 보면 그 옛날 첫사랑은이란 꿈에서도 점차 희미해지면서 잊어지고....... 안잘 나타나지 않게 고. 

나중에 이 두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본에도 잘못된(?) 결혼을문제를 노래 제기한 3절 까지만 있고 결론인 4절이 없다. 나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민요를 듣는 사람은 옛 사랑이 떠오르면서 자기 처지에 빗대어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띠거나, 또는 가슴에 찡한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쩌란 말인가? 김세레나의 흥겨운 노래와 예쁜 춤사위가 위안을 준다. 이 가민요노래의 매력 포인트이고 오랫동안 인기 있는 이유다.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갑돌이와 갑순이는 딴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따로따로 결혼을 했더래요

밤마다 둘이는 달보고 울었더래요

살다보니 음-음-음- 새까맣게 잊었더래요

 

혹은

 

 

그러다가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났더래요

시청 앞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쳤대요

달라진 모습에 너무나 실망했대요 

겉으로는 음-음-음- 반가운 척 했더래요

 

이렇게 되면 나름 무난한 해피엔딩이지만, 인생이 참 속절없다. 한때 뜨거운 불길처럼 타올랐던불길 같던 정념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그라지니진단 말인가 인생사가 참 허무하고 속절없다. 사랑도 현실 앞에서 타협되고 마는 것인가. 영 영원한 첫원한 사사랑이란 대문호의 장편 고전문학 책소설 안에서만 찾을 수존재할하고 수 있게 되었는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4절 노랫말을 덧붙인 글이 있었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우리는, 첫사랑의 그 아련하고도 청순한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사는 우리로서는 이런 결말을 받아들이기가 좀 어렵다. 그래서 또다른 결말.

 

 

갑돌이와 갑순이는 딴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 따로따로 결혼을 했더래요

그러나 둘이는 남몰래 만났더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이건 뭔가 아침드라마틱한 결말이 되는데, 사회 통념상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인가. 아아, 둘이는 만나도 불행하고 헤어져도 불행하구나. 헤어지면 못 봐서 불행하고, 만나면 곧 헤어질 것이기 때문에 불행하다. 비극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사실 이건 결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더욱 불행한 결말로 가는 과정일 뿐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그러다가 갑순이는 아이를 낳았더래요

아이 낳아 얼굴 보고 까무러쳤더래요

그 아이 얼굴은 갑돌일 닮았대요

겉으로는 음-음-음- 돌연변이인척 했더래요

 

앞으로 갑순이의 인생은 매우 험난할 것이 예상된다. 새로 태어난 아이도 아버지(갑순이 남편)의 박해를 받으며 반항아가 되어 사회 부적응자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 이건, 어떻게 봐도 바람직한 결말이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 가지 말고, 날도 더운데 납량특집 범죄 스릴러 스타일로 가기로 해 보자. 

 

 

갑돌이는 마누라를 목 졸라 죽였더래요

갑순이도 남편 몰래 약 먹여 죽였더래요

그리고 둘이는 도망쳐 버렸대요

겉으로는 음-음-음- 안 그런 척 했더래요

 

물론 이것은 위의 결말보다 더욱 더 끔찍한 것이지만, 나름대로 사랑, 암투, 범죄, 도피행이 어울려서 그럴 듯한 서사 구조를 만들어 낸다. 아아, 딸의 결혼을 강요한 갑순이 부모의 결정이 이렇게 끔찍한 비극을 낳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자식의 뜻을 무시하고 딸을 시집보낸 덕분에, 두 사람이 비명횡사하고 딸의 인생도 아주 위태해졌다. 마치 <지붕 위의 바이얼린> 에서 묘사되듯, 부모란 자식의 배우자에 대해 한껏 갈등하면서도 결국 자식의 선택을 지지해 주는 것이 제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비극을 낳지 않으려면 말이다.

 

노래 원곡의 뜬금 없는 마무리로 보아서는 4절이 필요하긴 한데, 둘이 일단 각기 결혼을 해 버린 이상 건전하고도 마뜩한 결말 스토리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역시 인생은 야속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판타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딴마을에딴 마을에 살았더래요

둘이는둘 이는 평생토록 그리워 했더래요

두 사람 마음은 변함이 없었대요

결국에는 음-음-음- 하늘의 별이 되었더래요

 

여기에 이 황량한 세상에서 가슴 찡한 해피엔딩 버전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며 실은 댓댓 글도 찾아내었다.

 

글쎄, 하늘이 별이 된 것도 판타지이지만, 평생토록 마음이 변하지 않고 그리워하는 것도 판타지라 하겠다. 사랑도 팔고 사고 시대에, 우리에게 이런 순정이 남아 있으려나. 

 

그래도 이런 결말이 그냥 무난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갑돌이와 갑순이가 결혼을 했더라도 둘의 인생이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갑순이는 '그 때 부모 말 들을 걸...'하고 후회하며 살지도 모른다. 설령 두 사람의 인생이 평생 재미지고 안락한 것으로 전개된다 하더라도, 조신의 꿈처럼, 지나고 보면 모두 덧없는 일장춘몽일 수도 있다. 그냥 서로서로 그리워하다 하늘의 별이 되는 게 차라리 낫다. 

 

여하튼 모든 일은 갑돌이와 갑순이가 서로서로 사랑을 했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한데서 시작됐다. 갑순이 부모가 딸을 딴 데로 시집보내려고 할 때, 갑순이가 마음에 있는 사람이 있다고 우기고 저항했으면 결국 둘이 혼인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안 그런 척 해서는 안 되는 성격의 일인지도 모른다. 하긴 그러나, 사랑처럼 겉으로 불쑥 내어놓기가 힘든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참, 마무리가 덜 된 노래 때문에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모르네. 찾아보니 이 노래의 작사자는 분명하지 않고 그냥 '민요' '전래가요' '미상'으로 되어 있다. 많은 사람에 의해 구전되어 왔다는 말인데,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 이렇게 어영부영 끝나게 놔뒀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4절이 있을 듯 한데, 망실된 것일까. 둘이 따로 결혼한 이상 건전한 4절이 나오기가 쉽지 않으니, 있더라도 짤린 것일까. 아니면 따로 결혼하는 것으로 볼장 다 보고 종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인가.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하숙집 아주머니 소개로 만난 부인 윤영자 씨에 대한 리영희 전 교수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것이 ‘갑돌이와 갑순이’였다. 리영희 전 교수의 회고 한 부분이다. “나는 까다롭게 분석하고 시비를 가려야 만족하는 형인데 반하여 그는 나의 까다로운 성격이 딱 질색인 덤덤하고 두루뭉실한 형이다. 내가 만사에 정삼각형적이고자 할 때 그는 타원형으로 나타난다. 만약 그의 성격이나 마음이 삼각형이거나 사각형이었다면 두 사람의 생활은 30년을 잇지 못했고, 어느 단계에서 모가 부딪쳐 불꽃을 튀기고 헤어졌을지 모른다.”

1971년 합동통신 기자로 있으면서 리영희 교수가 남긴 글이 주목된다. "남북한 쌍방이 강대국들을 배후에 끼고 군사적 대립을 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긴장을 완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한반도 정세는 1970년대에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점'의 상태가 될 것." 이 주장이 2010년에는 ‘옛날이야기’일까. 전혀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남과 북이 스스로 갈등과 반목을 줄이고 화해와 협력의 길을 열었으면 하는 게 리영희 선생 소신 아니었나? 남쪽 갑돌이, 북쪽 갑순이, ‘갑돌이와 갑순이’의 관계로써 이 노래를 해석해보고자 했다.

 

전기현 (1909년)

일제 강점기의 대중음악 작곡가이다.

생애[편집]

신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1930년대 초반부터 작곡 활동을 시작하여 1940년대까지 실력 있는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다. 경성방송국에서 홍난파와 함께 연주 활동[1] 을 하고 만주까지 순회하는 악단에도 참여했다. 30대의 나이로 요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3년 왕수복의 〈고도의 정한〉, 1934년에는 강홍식이 부른 〈조선타령〉을 작곡하는 등 포리돌레코드와 콜롬비아레코드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며 활동했다. 작사가 유도순, 박영호와 주로 호흡을 맞춰 〈수양버들〉(1936)과 같은 신민요풍의 노래를 많이 발표했다. 백년설은 〈나그네 설움〉으로 일약 대형 스타가 되기 전에 전기현 작곡의 〈유랑극단〉을 불렀고, 〈선창〉의 고운봉도 1939년 전기현이 작곡한 〈국경의 부두〉로 데뷔해 주목을 받았다.[2]

1941년에는 태평레코드에 입사했다. 이 무렵 작곡한 노래로 중국 민요를 번안한 〈야루강 춘색〉과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던 블루스 곡인 〈선창의 부르스〉가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며 전래민요로 알려진 김세레나의 〈갑돌이와 갑순이〉도 원곡은 전기현 작곡으로 발표된 〈온돌야화〉이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못보고 살았더래요.

늙어 늙어 두 사람 다 홀몸이 되었더래요.

그러다 다시 만나 같이 살았대요.

결국에는 음-음-음- 사랑을 이뤘더래요. 

 

독자 여러분도은 이런 아련한 추억이 있나요? 어떤 내용의 4절이 되었으면 하나요?

 

 

-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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